경험치 10배 기사 2화 — 누비옷으로 레벨 20

운영자 2026-10-04 18: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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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없이 누비옷 한 벌로 말하는 섬 필드에 나선 레인. 쪼렙 무시하던 고렙 파티가 도망친 자리에서, 누비옷 기사가 오크 전사 열 마리를 쓸어버린다.

1. 한 방

말하는 섬 필드. 오크 전사가 도끼를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사람 키만 한 도끼날이 햇빛을 받아 번뜩였고, 풀밭이 쿵쿵 울렸다.

초보 모험가: "아저씨! 피해요! 그거 오크 전사예요!"

나무 검을 든 초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도끼 앞에 선 남자는 갑옷도 없이, 여기저기 기운 회색 누비옷 한 벌만 걸치고 있었다.

레인: "알아. 이얍~"

남자가 한 걸음 내디뎠다. 검이 한 번, 가로로 그어졌다. 그게 끝이었다. 오크 전사가 허공으로 붕 떠올라 저만치 날아가 처박혔다.

그리고,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레벨업의 금빛이었다. 오크 한 마리에, 레벨이 다섯 번 올랐다.

금빛이 다섯 번 연달아 터졌다. 누비옷 남자는 태연하게 검을 거두었다. 초보들의 손에서 나무 검이 툭툭 떨어졌다.

초보 모험가: "…한 방에 레벨이 다섯 개? 누비옷으로?"

하루 전.

2. 오크 백 마리

새벽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말하는 섬 필드. 레인은 기지개를 쭉 켰다.

레인: "오늘 목표. 오크 백 마리."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계산을 시작했다.

레인: "고블린 다섯 마리에 레벨업 세 번이었으니까…"

눈동자가 스르르 풀리고,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갔다.

레인: "백 마리면… 흐흐흐."

첫 상대는 오크였다. 말하는 섬에서 제일 흔한 몬스터. 녹슨 식칼을 든 오크가 달려들자, 레인은 가볍게 베어 넘겼다. 금빛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레인: "한 마리에 레벨업 번쩍! 좋아!"

그때 오크 궁수의 화살이 날아왔다. 정확히 누비옷 한가운데로. 푹. 레인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누비옷에 동전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레인: "구멍 났잖아! 이거 한 벌뿐이라고!"

화살 맞은 것보다 옷에 구멍 난 게 더 억울한 얼굴이었다.

오크, 오크 궁수, 또 오크. 레인은 쉬지 않고 베었다. 레벨업 빛이 하도 번쩍여서, 멀리서 보면 등대 같았다. 바다 위 고깃배의 어부가 그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가 고개를 갸웃했을 정도였다.

그 빛을 보고 모여든 건 어부만이 아니었다. 커다란 바위 뒤에서 작은 머리들이 빼꼼 튀어나왔다.

초보 모험가: "저 누비옷 아저씨 뭐야?"

레인은 못 들은 척 말총머리를 쓸어 넘겼다. 곁눈질은 이미 바위 쪽에 가 있었다.

레인: "흠흠. 팬이 생겼군."

그는 검을 하늘로 치켜들고,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잡았다.

레인: "꼬마들. 기사는 말이야, 갑옷이 아니라—"

그 순간이었다. 수풀 속에 숨어 있던 오크 궁수가, 활시위를 당겼다.

슉.

레인: "아악! 엉덩이!"

레인이 제자리에서 수직으로 튀어 올랐다. 오크 궁수 한 마리가 수풀 속에서 활을 내리고 있었다. 바위 뒤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초보 모험가: "…갑옷이 아니라 뭐요?"

레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엉덩이의 화살을 뽑았다.

레인: "…갑옷도 좀 필요하긴 해."

3. 누비단

그날 해 질 녘. 바위 뒤의 초보들이 줄을 서서 따라오기 시작했다. 레인이 멈추면 멈추고, 레인이 걸으면 걸었다. 새끼 오리 떼 같았다. 레인은 몇 번이나 뒤를 흘끔거리다가, 결국 돌아섰다. 그러자 초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초보 모험가: "아저씨! 제자로 받아 주세요!"

레인은 뺨을 긁적였다.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려 있었다.

레인: "제, 제자? 나 그런 거 안 받는데…"

초보 모험가: "벌써 팬클럽도 만들었어요. 누비단!"

초보 하나가 나뭇가지에 묶은 깃발을 번쩍 들었다. 회색 천 조각을 기운 깃발이었다. 누가 봐도 레인의 누비옷을 흉내 낸 것이었다.

레인: "…이름이 좀 가난해 보이는데."

초보 모험가: "회비는 한 사람당 1 아데나예요!"

그 순간 레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오크 전사를 볼 때보다 더 날카로웠다.

레인: "회비? 그건 누가 관리하지?"

초보 모험가: "당연히 회장님이죠. 아저씨요!"

작은 손들이 차례로 레인의 손바닥 위에 금화를 한 닢씩 올려놓았다. 짤랑, 짤랑, 짤랑, 짤랑, 짤랑. 5 아데나. 레인 인생 최대의 정기 수입이었다. 레인은 금화 다섯 닢을 노을 진 하늘에 높이 비춰 보았다. 성물이라도 받드는 자세였다.

레인: "누비단이여… 영원하라!"

눈물을 글썽이며 검을 치켜든 누비옷 회장 뒤로, 나무 검 다섯 자루가 일제히 올라갔다.

4. 여기 우리 자리다

다음 날. 오크 전사가 몰려나오는 필드 북쪽 언덕. 풀이 반들반들하게 밟혀 있는, 누가 봐도 명당인 자리였다. 그리고 명당에는 늘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있다.

카일: "어이, 누비옷. 여기 우리 자리다."

금테 두른 번쩍이는 갑옷, 기름 발라 넘긴 금발. 팔짱을 낀 젊은 검사 뒤로 그의 파티원들이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파리 쫓듯 손을 휘휘 저었다.

카일: "쪼렙은 저리 가서 고블린이나 잡아."

레인: "필드에 주인이 어딨어."

카일: "누비옷 입고 사냥? 거지 코스프레야?"

카일은 레인을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그리고 제 금빛 흉갑을 톡톡 두드렸다.

카일: "난 레벨 25다. 넌 몇인데?"

레인은 진지하게 머리를 긁었다. 어제 하도 번쩍거려서,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레인: "몰라. 세다가 까먹었어."

카일: "…레벨을 까먹는 놈이 어딨어?"

5. 전략적 후퇴

그때, 언덕 너머에서 땅이 울렸다. 오크 전사, 열 마리.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줄로 언덕을 넘어오고 있었다.

카일: "여, 열 마리? 후퇴! 후퇴!"

카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고렙 파티는 뒤도 안 보고 도망쳤다. 근처에서 구경하던 초보들만 남겨둔 채.

레인은 먼지구름 속으로 멀어지는 금빛 갑옷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쩐지 등골이 서늘할 만큼 익숙한 광경이었다.

레인: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초보 모험가: "아저씨, 우리 어떡해요?!"

초보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먹였다. 레인은 한숨을 한 번 쉬고, 그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

레인: "내 뒤에 서. 앞은 내가 막는다."

칠 년 동안 맨 앞을 지킨 방패. 이번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레인은 오크 전사들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오크 전사가 한 마리씩 날아갔다. 도끼가 누비옷을 스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언덕 아래에서 익숙한 비명이 들려왔다.

카일: "으아악! 왜 나만 쫓아와!"

도망치던 카일이 발이 꼬여 풀밭에 코를 박았다. 오크 전사 한 마리가 그 위로 도끼를 치켜들었다.

쾅. 레인의 검이 카일 코앞의 오크 전사를 날려버렸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누비옷 기사가 검을 어깨에 걸친 채 카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인: "여기 네 자리라며. 지켜야지?"

카일: "이, 이건 전략적 후퇴였어!"

카일의 얼굴이 금테 갑옷보다 더 빨개졌다. 머리카락에는 풀잎이 잔뜩 꽂혀 있었다. 언덕 위에서 초보들이 나무 검을 흔들며 방방 뛰었다.

초보 모험가: "고렙이 누비옷한테 구해졌다!"

그 말에 카일이 벌떡 일어났다.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면, 주워 담아야 했다. 그는 허리춤에서 초록 물약을 꺼내 들고 턱을 치켜세웠다.

카일: "흥. 마지막 한 마리는 내가 잡는다!"

초록 물약 원샷. 카일이 바람처럼 튀어 나갔다. 오크를 지나쳐서. 남은 오크 전사가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돌리는 사이, 금빛 갑옷은 초록 잔상을 남기며 언덕 끝의 커다란 나무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쿵.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카일은 나무둥치에 얼굴을 박은 채, 두 다리를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레인은 검을 어깨에 걸친 채 그 광경을 한참 바라봤다.

레인: "…저건 무슨 전략이야?"

카일: "…전략적 돌격이었어."

나무껍질에 입이 눌린 채로, 카일이 웅얼거렸다. 레인은 한숨을 쉬고, 어리둥절한 마지막 오크 전사를 베었다.

마지막 오크 전사가 쓰러지자, 금빛 강물이 레인에게로 쏟아져 들어왔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레인은 빛나는 제 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레인: "방금 번쩍 다섯 번… 레벨 20?"

카일: "누비옷으로… 레벨 20?!"

카일의 턱이 땅에 닿을 것 같았다.

6. 현찰 손님

레인은 쓰러진 오크 전사 옆에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았다. 아덴 대륙의 모든 모험가가 한 번쯤 해봤을 그 기도였다.

레인: "제발 아데나. 제발 아데나. 제발…"

툭. 첫 번째 오크 전사가 떨군 건, 가죽 샌들 한 짝이었다. 햇빛이 그 샌들 한 짝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췄다.

레인: "한 짝?! 나머지 한 짝은?!"

이마에 커다란 혹을 단 카일이 코웃음을 쳤다.

카일: "기도는 무슨. 드랍은 운이야."

레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두 번째 오크 전사 옆에 이마를 땅에 박고 엎드렸다. 성스러운 빛이 나는 것 같은 자세였다.

레인: "제발 아데나. 제발 제발 제발!"

짤랑. 오크 전사가 묵직한 아데나 주머니를 떨궜다. 금화가 풀밭 위로 쏟아지며 반짝였다.

레인: "드디어… 나도 부자다!"

그는 주머니를 뺨에 비비며 울었다. 어깨 너머로 카일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어색하게 두 손을 모아 보고 있었다.

카일: "…그 기도, 어떻게 하는 거야?"

레인은 주머니를 손바닥 위에서 통통 튕기며 씨익 웃었다.

레인: "비법이야. 누비단 회원만 알려줘."

말하는 섬 마을, 잡화상. 문을 열고 들어서는 누비옷을 보자마자 주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잡화상: "또 자넨가. 외상은 절대 안 되네."

쿵. 레인이 묵직한 주머니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금화 몇 닢이 튀어나와 데굴데굴 굴렀다. 잡화상의 얼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잡화상: "외상 아니고 현찰일세! 어서 오십쇼!"

허리가 90도로 접혔다. 두 손은 벌써 싹싹 비비고 있었다.

레인: "초록 물약. 세 병."

잡화상: "서비스로 빨간 물약도 한 병 얹어 주지!"

잡화상이 윙크하며 빨간 병을 내밀었다. 레인은 오만상을 쓰며 그걸 밀어냈다.

레인: "됐어. 그건 백 년이 지나도 맛이 없어."

잡화상은 굴하지 않고, 파란 봉인이 찍힌 두루마리를 꺼내 흔들었다.

잡화상: "귀환 주문서도 한 장 어떤가? 필수품일세!"

레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가게 한복판인데, 등 뒤에서 던전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혈맹이 푸른 빛과 함께 사라지던 그날의 발소리였다. 그는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질 쳤다.

레인: "그건… 안 사. 보기만 해도 속이 쓰려."

잡화상: "귀환 주문서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가게를 나서자마자 레인은 초록 물약 한 병을 들이켰다. 다리에 바람이 붙었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튀어 나갔다.

레인: "오오! 빠르다! 멈출 수가 없어!"

말하는 섬 광장에 흙먼지 한 줄기가 그어졌다. 닭들이 꽥꽥거리며 날아올랐고, 건초 더미가 흩어졌다.

7. 소문

같은 시각, 어느 주점. 철늑대 혈맹원 하나가 게시판 앞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철늑대 혈맹원: "총무님, 레인이 레벨 20 찍었대요."

장부를 넘기던 피나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피나: "누비옷으로요? 레벨 20이요~?"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주판알을 탁, 탁 튕겼다.

피나: "소문은 검산부터 해야죠~"

8. 은빛 화살

해 질 녘. 집채만 한 오크 우두머리가 비틀거렸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거대한 식칼을 지팡이 삼아 겨우 버티고 있었다. 한 방이면 끝이었다.

레인은 높이 뛰어올랐다. 노을을 등지고, 검을 치켜들고.

레인: "막타는 내 거다아!"

슉.

은빛 화살 하나가, 레인의 칼보다 먼저 꽂혔다. 오크 우두머리가 무너졌다. 그리고 레인에게 쏟아져야 할 금빛 경험치가, 방향을 틀어 저 멀리 나무 쪽으로 흘러갔다.

레인: "…어? 내 경험치?"

노을 진 나무 위. 높은 가지에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 활을 내리고 있었다. 녹색 망토, 뾰족한 귀, 그리고 차갑게 빛나는 초록 눈.

리엘: "이 오크는 내가 먼저 찍었어, 인간."

— 다음 화, 「요정한테 막타 뺏겼다」


등장인물

  • 초보 모험가 — 말하는 섬의 쪼렙들. 레인의 첫 팬.
  • 레인 — 시즌1 주인공. 혈맹에게 미끼로 버려진 기사. 경험치가 남들의 10배로 들어오는 체질.
  • 카일 — 말하는 섬 필드의 까칠한 고렙. 쪼렙 무시가 취미.
  • 잡화상 — 말하는 섬 마을 잡화상 주인. 외상은 절대 없다.
  • 철늑대 혈맹원 — 철늑대 혈맹의 평범한 혈맹원들.
  • 피나 — 철늑대 혈맹의 총무. 바르크의 오른팔이자 잔소리꾼.
  • 리엘 — 요정 숲의 궁수. 인간을 '인간'이라고만 부르는 츤데레. 3화 합류.

이 화에 나온 몬스터·아이템

작가 노트

좋은 사냥터 앞에서 고렙한테 "여기 우리 자리" 소리 들어본 적, 다들 한 번쯤 있으시죠? 2화의 오크·오크 궁수·오크 전사는 모두 말하는 섬 필드에서 실제로 만나는 몬스터이고, 레인이 드디어 산 초록 물약도 그 시절 필수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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